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버지의 '유창하지 못한' 영어

라이프/웰빙, 라이프, 좋은글

by 라제폰 2009. 3. 13. 09:15

본문

아버지의 '유창하지 못한' 영어 
 

 

하버드대 김용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대학 총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자 갑자기 세계 최고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생각났다. 두 사람 모두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이지만 김씨는 의과대학 교수이고, 버핏은 금융투자자여서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내 기억에 두 사람은 '자녀 교육관'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김씨를 만난 것은 지난 2006년 5월8일 저녁 무렵 맨해튼에서였다. 그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에 뽑혀 센트럴파크 서남쪽 타임워너센터에서 상을 받기 위해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왔다. WHO(세계보건기구) 에이즈 담당 국장으로 일하면서 30만명이던 후진국의 에이즈 치료자 수를 130만명으로 늘려 놓은 공로였다. 시상식 직전에 인근의 고풍 창연한 호텔 로비에 마주 앉자 호리호리한 몸매에 짙은 회색 양복을 입은 김씨가 에이즈퇴치법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이 어떻게 미국에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나요?"

김씨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퇴계 이황과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시며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라'고 하셨죠." 김씨는 "어머니의 말씀을 평생 명심하고 살았다. 어머니가 나를 교육시킨 방식으로 두 아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김씨를 만난 지 1년이 지난 2007년 5월 6일, 나는 워런 버핏 회장과 처음 만났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이었다. 버핏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단상에서 내려와 50여명의 기자와 소탈하게 대화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는 당시 버핏에게 중국의 성장가능성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가 중국을 거의 모른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하지만 그가 자녀 교육에 대해 한 말은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하기 마련입니다. 부모들이 미래를 보면서 자신의 길을 간다면 아이들도 그럴 겁니다."

전날 주총장에서 10살짜리 소녀가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고 물었을 때에도 그의 답은 "부모나 어른들과 상의하라"는 것이었다. 1년 뒤 다시 만났을 때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두 번째 들으니 신선감은 떨어졌지만, 주식중개인인 아버지를 본받아 투자자의 삶을 시작한 자기의 진솔한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고 확신했다.

미국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 덕분에 출세한 한국인은 많다. 한국인으로서 월스트리트 최고 지위까지 올라간 김도우 전 메릴린치 사장은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려면 크게 생각해야 한다(think big)'는 아버지의 말을 항상 깊이 새겼다"고 했다. 뉴욕의 한 자산운용사 김모 사장은 "아들을 (명문사립고교인) 필립스 앤도버에 입학시키기 위해 '유창하지 못한' 영어로 교장에게 사정하던 아버지의 정성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부모들의 어깨가 움츠러들고 있다. 가슴을 펴고 꿋꿋이 현실과 맞서는 부모들의 모습만큼 자녀들에게 큰 경제교육은 없을 것이다.
                                                              

  •  

  •  - 김기훈 경제부 차장대우


  •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