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판악 코스
(진달래밭 대피소 3시간-7.3km, 정상 4시간 30분- 편도9.6km)
성판악 입구(해발750m)→약80분, 3.5km 속밭→약 40분, 2.1km 사라악약수터→약 60분, 1.7km 진달래밭대피소→약 90분, 3.3km 백록담 동능정상
옥수(玉水)를 자랑하며 신비로운 구름에 싸여 세상에 내려앉은 선경,
백록담 노루들의 천진스러운 모습과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신성이나 된 듯 꿈결같다.
해뜨기 전 휴게소 풍경들
제주시와 서귀포시 구간을 잇는 5.16도로상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750m의 성판악 휴게소. 어슴푸레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성판악에 이르자 벌써부터 휴게실에는 커피향기가 가득하다. 입산준비를 갖추는 건강한 아침이 물씬 느껴지는 풍경과 함께 까마귀들이 ‘쉭쉭’ 신기한 날개짓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부모를 봉양한다는 큰부리까마귀들이 그 부지런함을 떨 때, 나도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따듯한 옷을 가다듬고 숲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람 한점 없는 숲의 터널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가 뺨을 약간 얼얼하게 하지만 폐 속 깊이까지 그 신선함에 걷는 걸음걸음이 가뿐하다.
성판악 코스에서 백록담을 향하다.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 등반 코스 중에서 가장 길고 평탄한 코스. 백록담 구간까지 가게 되면 그 왕복거리만도 약 20km나 된다.
한라산 휴식년제로 2005년 2월까지 거리가 짧은 영실과 어리목 코스의 백록담 구간이 통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백록담에 오르기 위해 찾고 있다.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거의가 숲에 가려져 전망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진달래밭 대피소에 이르면 시야가 훤히 트인다. 정상까지 2.3km에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정상 동릉에 이르면 그 후련함이란~
이곳에서 절대 주의해야 할 것은 한라산 등반 코스는 몇 개의 지정 코스가 아니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열 두 번 이상 날씨가 변한다는 한라산. 365일 중 맑은 날이 100일 흐린 날이 150일, 그리고 악천후가 나머지 일수를 기록한다는 한라산 지기의 말을 들어보면 한여름이라도 꼭 단단한 준비를 하고 가야한다.
리듬에 몸을 맞춰 쉬~어 가자.
걸음걸이에 무게감이 느끼게 될 쯤에 숲 속에 해가 뜬다. 숲 속을 걷다보면 사실 시간을 잘 느끼지 못한다. 햇볕이 자갈길에 손바닥을 찍을 때, 문득 정신이 기지개를 켠다.
진달래대피소까지 가기 전에는 화장실이 한 곳 밖에 없다. 쉼터를 만나면 잠시 쉬~어 가자.
쉬는 것도 쉬는 거지만 가지고 온 오이가 그 상큼한 파워를 나타내는 순간도 이때. 오이는 갈증 해소에 탁월하고 출출함을 달래준다. 아주 평범한 보통 오이지만 여기에선 산삼만큼이나 힘을 준다. 양갱, 초콜릿, 사탕 등도 챙겨오면 손해는 안 본다.
성판악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지났나? 구세주처럼 만난 사라악 약수터. 이미 바닥난 물통을 채우고 목을 축인다. 약수터에는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정겨운 물자걸이가 있다. 물맛 단 약수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한 풍경에 졸졸 흐르는 약수를 마시고 빈 물통을 가득 채우고선 잠시 쉬어간다. 짭쪼름한 입술을 씻어내니 다시 위로 올라갈 용기가 생긴다.
식물과 야생동물의 낙원
한라산의 특징 중 하나는 맹수가 없다는 것과 식물분포가 세계적이란 것이다.
아열대, 온대, 한대의 삼대 식물이 번성해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4,000여 종의 식물 중 그 절반에 가까운 1,800여종이 한라산에 있다. 가을 한라산을 오르면서 주위를 살펴보면 단풍나무가 많지 않다. 그 대신 팥대나무와 마가목 등의 열매는 빨간 열매를 가득 자랑한다. 이 열매들이 산새들의 식량이 된다하니 새들도 많아 가을산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1,300m 이상 올라가면 구상나무와 주목 등의 침엽수림이 주위를 감싼다. 살아서 백년 죽어서 백년을 산다는 구상나무는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열매를 달고 푸르게 등산로를 감싸고 있고, 그 하얗게 말라버린 모습조차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 느껴진다.
드디어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 점심시간이다~
한라산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거치는 진달래밭 대피소.
해가 중천이라 배도 고프고 다양한 것은 없지만 정말 맛이 진국인 이 곳 매점의 컵라면과 가져온 주먹밥은 아~ 부러울 것 없다.
혹시 백록담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고 싶다면 조금 참아주길 부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나면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와 뒹구는 물병이 정작 백록담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것은 산을 오르는 사람의 예의가 아닐까.
진달래밭에서는 백록담 등반이 12시 30분부터 통제된다. 그리고 백록담에서는 2시전에 하산해야 한다. 아니면 깜깜한 산을 헤매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백록담을 향하는 구름속의 산책
진달래밭에서 1시간 정도 걸어올라 관목 숲을 벗어나면 제주도 동쪽의 조망이 훤히 트인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중산간 지대와 성산일출봉 사이로 수많은 오름들이 실루엣으로 펼쳐져 산행객의 탄성을 자아낸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구름이 몰려와 수평선을 가리고 몇 개의 오름만이 보였지만 오를수록 바다 수평선과 자라난 구름들, 주위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구름 속에서 발만 땅에 붙어 있지 말 그대로 구름 속을 산책할 수 있다.
백록담이 손에 잡힐 듯 우뚝 솟아나고 다른 등산객들이 한가롭게 정상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안도감과 백록담의 푸른 물이 가슴까지 밀려들어 온다. 분화구 깊이만 108m나 된다는 백록담. 늦은 여름 내내 태풍이 채워둔 백록담의 푸른 모습이 신선이 살만하다고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할 수만 있다면 저 물위에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제 그만 하산하자.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집에 전화도 해보고 약간의 글도 써보지만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백록담. 이제가면 언제 올까 맘속에 기약을 하고 내려온다. 마지막에 내려온 우리들에게 노루들이 유난히도 많이 보인다. 아마도 사람들이 다 내려갔다고 생각을 했나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노루들이 놀랄까 걷는 걸음걸음이 조심스럽다. 규격 지워진 등산로에서 바라보는 사람과 초원에서 우리를 살피고 있는 노루들…
내려 올 때는 성판악과 관음사코스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시간 여유가 있게 백록담에 도착했다면 관음사로 내려가도 괜찮지만 시간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올라왔던 익숙한 코스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하산시간을 명심하지 않으면 밤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고, 내려 갈 때는 피로가 겹쳐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넘어질 수 있다. 이건 정말 경험담인데 백록담 구간에서 왼발이 삐어 30분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 내려왔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파스와 압박붕대로 고정을 하고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잡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산과 사람이 만나는 한라산.
부디 백록담까지 가서 사진만 찍고 내려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빈손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빈손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꽤 많기 때문이다. 물병하나 김치 한조각도 이곳에서는 생태를 파괴한다. 자기가 가져온 것만이라도 되가져 가는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모두들 백록담과 한라산의 푸르름을 닮아서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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