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고도, 경주로의 시간 여행
하얗게 깨끗한 강아지 한 마리가 부산히 움직인다.
넓고 넓은 그래서 황량하기까지한 황룡사터.
그 한가운데 강아지 한 마리와 내가 서 있다.
괜히 그런 상상을 해 본다.
저 강아지는 혹시 전생의 어떤 기억을 갖고 여길 찾지 않았을까?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 혹은 신혼여행 등으로 한번쯤은 가 본 도시지만 우르르 몰려 갔다 사진만 찍고 우르르 돌아와서 남은 거라곤 달랑 사진 몇 장.
그래서 오해를 참 많이 받고 있는 도시가 경주가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경주를 찾았다.
KTX가 생기더니 흠흠….기차 사정이 아주 안 좋아져 버렸다는 불평을 툴툴 거릴 무렵, 경주로 들어서는 길에 흔들리는 억새의 물결에 잠시 넋이 나가고, 예쁘게 그 빛깔을 자랑하는 단풍의 향연에 감탄을 하게 된다. 기차 따위가 어땠는지는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보문호 주변의 아름다운 단풍에 마음을 뺏겼지만 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되새기며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관령 아흔아홉구비가 무색할 석굴암 올라가는 길,
아찔한 느낌마저 주는 아슬아슬 고개 길을 돌아 경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석굴암 앞에 서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석굴암 본존불을 대할 때마다 일제 시대의 문화적 수탈에 화가 나지만 석굴암을 저리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지금 우리네 현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석굴암을 뒤로 하고 불국사로 향하는 3.2km의 등산로는 단풍이 절정을 이뤄 그냥 걷는 것만으로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불국사는 역시 불국사다.
너무도 유명해서 아주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돼 버린 불국사,
그 유명세가 도리어 毒이 돼 버린 경우라 할 수 있다.
절 문을 들어서니 또 공사 중이다. 우리나라 사찰 중 공사 중이지 않은 곳이 몇 군데나 될까?
잠시 한숨이 나오지만 붉게 물든 단풍들 속에 노랗게 피어 있는 개나리를 보니, 웃음이 나온다.
바로 청운교과 백운교의 전경.
불국사의 또 하나의 명물은 멋드러진 소나무 숲이다.
청운교와 백운교 사진에는 항상 이렇게 소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다.
(못 믿겠다면 인터넷에서 한번 검색해 보시라.^^)
불국사 너른 마당에 들어서니 청운교&백운교, 연화&칠보가 방문객을 반긴다. 여기 저기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한 쪽에 얌전히 서 있는 당간 지주에 기어 오르는 사람들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 지지만…뭐라 할 수고 없고 범영루의 돌담을 끼고 돌아 대웅전이 있는 마당에 들어섰다. 대웅전의 마당에는 더 반가운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다. 대웅전과 두 탑이 이루는 가람 양식은 매우 안정적이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불국사’라는 이름이 주는 ‘거대한’ 느낌이 이 가람배치로 인해 안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너무도 유명한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습
역시나 교과서에서 보던 친숙한 모습이다.
경주 국립 박물관에 가면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불국사를 찾을 때 국보 몇 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문화 유산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불국사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다. 마치 불국사를 보호하듯 감싸안고 있는 이 소나무 숲을 보면 ‘자연과의 조화’라는 책에서만 보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아…이래서 불국사는 위대한 사찰이구나.’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신라라는 나라는 이 땅에 부처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불국토를 꿈꿨다. 그런 관계로 어딜가나 만나게 되는 것이 절터나 석탑 그리고 그 흔적들이다.
분황사 모전 석탑(좌)
‘모전’이란 의미는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는 뜻이다.
저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모전’ 석탑을 설명해 준다면 절대 잊지 않을텐데.
분황사터에 남아 있는 추사 김정희의 금석문 (우 상)
조선시대 분황사 발굴과정에서 추사 김정희가 그 쓰임새를 밝혀내 글을 남겼다고 한다.
황룡사터 (우 하)
그 터만으로도 과거의 영화가 짐작이 간다.
흔적만으로도 그 위용을 짐작케 하는 황룡사나 달랑 석탑 하나 남아 있지만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분황사도 그런 곳들 중 하나다.
분황사 석탑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열심히 그 탑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자신의 고장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진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 역시 즐거움 중 하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분황사 모전 석탑이 왜 ‘모전’인지를 알려주시면 참 좋을텐데.
분황사와 황룡사 터, 경주 국립 박물관, 안압지, 계림, 천마총을 포함한 대릉원등은 말 그대로 한 구역이다. 차를 타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붙어 있다. 거대한 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경주의 위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천마도가 나왔다고 해서 천마총이 된 거대한 능원과 아직도 그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첨성대, 신라의 건국신화와도 관련이 있는 계림 그리고 내물왕의 능까지 숨가쁘게 경주를 돌았다.
← 첨성대
밤에 보면 조명을 설치해 환상적인 느낌까지 준다.
사각형의 구멍이 나 있는 곳을 자세히 보면,
사다리를 걸쳐 놓는 자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저 높이까지는 안에 흙이 채워져 있는 걸로 봐서 저 구멍을
통해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번 경주 여행도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뭔가를 남겨두고 오는 느낌이 자꾸 나를 붙잡는다.
경주는 한 일주일쯤 진득히 붙어 앉아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곳이라 그런가 보다.
다시 기차를 타러 가면서 경주의 그 유명한 황남빵을 하나 사서 입에 넣는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단 맛이다.
김알지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다는 계림.
닭 울음 소리가 나서 가 보니 금궤와 흰 닭이 울고 있었다는 곳으로 금궤와 함께 있었다고 해서 ‘金’의 성을 갖게 되었으며 닭 울음 소리가 났다하여 저 곳이 ‘계림’ 혹은 ‘始林’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실제로 신라의 김씨 세습을 확립한 내물왕의 무덤이 있다.
안압지의 전경
신라 왕실의 후원 혹은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실제로 신라의 왕궁터라는 반월성터와의 거리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가 아닐까?
경주국립 박물관에서.
좌측에 보이는 것이 어느 무덤에서 발굴된 달걀이다.
그 긴 시간동안 썩지 않고 그 모양이 고스란히 보존 됐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저 허리 장식이나 천마의 모습도 너무 앙징 맞다.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
그 신비한 소리에 얽힌 슬픈 사연이 더욱 인상적인 종.
이젠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그만큼 슬프다.
← 경주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쌈밥 정식
경주의 유명한 맛집을 소개해 달라는 필자의 말에
경주에는 먹을 게 없다고 답하던 택시 아저씨.
8,000원에 약 24가지 정도의 반찬이 쫘~악.
다만...음식의 간이 좀 세서 밤새도록 물을 마셔야만 했던
고통스런 기억이 있다.